원래, 이러한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개념들을 내 블로그엔 최대한 올리지 않으려 했다.  퍼오는 것이던 내가 작성하는 것이던 간에.  퍼올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것이라도 하겠다.  더이상 필론의 돼지가 되지 않겠다.

대한민국의 선거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창피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가 저사람을 찍지 않았더라도 주위사람들에게 만류하지 못한 것은 내 책임이리라.  잃어버린 10년을 표방하고 있는 그들과 그들을 머리로 둔 우리는 몇년을 잃어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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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촛불 1주년 기념 문화제.

명동에서 이루어진 집회 진압과 해산 과정에서 집회와 무관한 시민들이 연행되는가 하면
외국 관광객들이 경찰에 연행되거나 폭행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요시이리씨는 한국문화와 음식을 좋아해 7번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5월 초에는 황금연휴를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관광을 왔다.

명동에 있는 단골 고깃집을 찾아가다가 길 한복판에서 봉변을 당한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밀리오레 부근을 지날때 7~8명의 경찰이 달려와 그를 때리고 발로 밟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구타한 경찰과 책임자를 찾아달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소송이나 배상을 원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타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듯한 한국경찰의 태도에 분노했다.

PD수첩이 이 사건의 처리과정에 대해 문의하자 경찰은 수사가 진행중이라고만 답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내놓은 대책은 앞으로 집회해산명령을 일본어로도 하겠다는것이 전부다.





데이트 약속이 있어 야근을 마치고 명동에 도착하자마자 연행된 이계용씨.







이 날, 연행자 가운데는 지적장애인도 있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그를 본 이승택씨는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1인시위에 나섰다.





올해 36살인 지승환씨는 지적장애인이다.
지적장애 2급의 수준은 10살 아동보다 지적 사회적인 능력이 떨어진다.

5월 2일 명동에서 연행된 지승환씨는 현재 구속 수감상태다.

그의 구속사유는 집시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
연행되기 전날 시위에서 박카스병을 투척했고,
하이 서울 페스티발에서 카퍼레이드 차량의 풍선을 터뜨렸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촬영된 화면을 보면 카퍼레이드 차량의 풍선을 터뜨린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그러나 담당 경찰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5월 2일 명동 연행자 가운데는 미성년자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올해 고1인 유현주 학생도 명동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현주양은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잡힌것이 아니었다.
선배 연행에 항의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항의 모습을 경찰이 카메라로 채증하면서 시비가 붙었다.
현주가 카메라를 치자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난 5월 1일 여의도에서 노동절 행사가 열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내 중심에서 개최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도심집회 신청이 모두 불허됐다.

행사 후 참가자들은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지하철은 시청역을 무정차 통과했고, 시청역 입구는 모두 봉쇄됐다.
역사 안에 갇힌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10분정도 갇혀있던 시민들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간신히 지상으로 올라왔다.


종로3가 지하철역 주변도 경찰이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은 지하철 역사 안까지 진입해 일부 출입구를 완전히 막아섰다.

시민들이 호소해도 경찰은 꼼짝하지 않았다.
성난 시민들이 밀고 올라가려 하자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며 저지했다.




 



간부로 보이는 경찰 한명은 긴 장봉을 휘두르며 시민들을 쫓았다.
장봉을 휘두른 경찰은 조 모 경감이었다.
조 모 경감에게는 '사무라이 조' 라는 별명까지 붙여졌다.





그날 김철수 기자는 조경감이 휘두른 장봉에 맞았다.
그는 며칠동안 심한 멍과 붓기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조경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행동은 시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방어차원의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김지환씨는 경찰의 곤봉에 맞아 머리에 상처를 입고 7바늘을 꿰맸다.
김씨는 역사를 빠져나가려던 상황에서 곤봉에 맞아 그 후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일,
덕수궁 앞 시민분향소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다섯살짜리 아이가 켠 촛불이 말썽이었다.







부모님과 경찰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아이는 스스로 촛불을 껐다.

경찰의 과민한 대응은 촛불 1주년 기념 집회에서도 나타났다.
하이서울 페스티벌 개막식이 열렸지만, 경찰은 행사보호 보다는 촛불집회 참가자 차단에 집중했다.

저녁 7시 이후, 경찰은 광화문 사거리를 막고 집회 참가자들을 몰았다. 남대문 앞으로 경찰이 봉쇄했다.
결국 시위대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렬과 섞인 채 시청광장으로 향했다.







당시 시청광장에서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개막식 리허설이 진행중이었다.
불어난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리허설 무대를 점거했다.

경찰은 곧 무대를 점거한 참가자들을 진압하고 연행에 돌입했다.

5월 1일, 시청 연행자 가운데는 시민악대 단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무대를 점거한 적도 없고 단지 시청역 주변에서 공연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시민악대가 시청광장에 도착한 때는 경찰도 연행을 막 끝마치고 소강상태였을때였다.

시청역 5번출구 부근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시민악대는 그들과 어울려 연주를 하고 율동도 선보이며 흥을 돋웠다고 한다.
경찰의 특별한 제지는 없었다.




 




이날 연행된 시민악대는 모두 5명.
집시법 위반과 축제방해 혐의였다.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시민들이 시청 근처 대한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날 경찰은 92개중대 8,2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시민분향소 주변을 겹겹이 에워쌌다.







시청역 1번출구에는 시민분향소로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들이 점점 불어났다.
대한문 시민분향소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근처에 임시분향소를 만들었다.
초라한 이곳에도 시민들의 추도가 이어졌다.

 

서울 경찰청장은 경찰버스가 분향소를 막아줘 아늑하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기간동안 서울시내에서 집회가 가능한 공간에는 어디든지 경찰이 먼저 들어서있었다.
경찰은 추모시민들을 잠재적인 시위꾼으로 바라보았다.

 


영결식 다음날 새벽, 경찰은 대한문 시민분향소를 철거했다.
시민들의 항의에도 경찰은 철거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3명이 연행됐고 분향소가 심하게 훼손됐다.





그리고 서울시청광장은 다시 봉쇄됐다.

 


5월 20일 경찰청 앞.
신고가 필요없는 기자회견이지만, 경찰은 임시 폴리스라인을 쳐놓고 기자회견 관련자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경찰이 병풍처럼 에워싸 기자회견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조차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경찰의 지침에는 기자회견과 촛불문화제를 빙자한 집회에 법을 엄격히 적용하라고 나와있다.

 




 



5월 4일, 경찰의 무차별적 연행에 항의하고 이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경찰이 기자회견을 하려는 사람들을 에워쌌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가자들이 해산하려는 순간 경찰이 행동을 시작했다.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경찰은 이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간주했다.

이 날, 발언을 한 시민단체 관련자들은 경찰에 연행됐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48시간동안 유치장에 갇혀있었다.

 


올해 초, 경찰청에서 작성한 불법폭력시위 관련단체 현황 문건이다.

경찰이 불법폭력단체로 규정한 곳은 작년 촛불시위와 관련된 1,840개 단체다.
여기에는 시민단체, 국회의원, 문화관련 단체까지 망라되어 있다.




 



불법으로 규정된 단체의 집회는 원천봉쇄하거나 강경하게 진압한다.
경찰은 해산을 유도하기 보다는 시위자 검거에 더 열성적이다.



5월 1일, 2일 집회 상황을 종합한 경찰 내부 문건.






경찰은 노동절 집회를 도심 외곽으로 유도했다.
도심권 4개의 집회는 신고를 해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경찰의 목표는 집회에 참가한 좌파세력발본색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목적을 위해서 현장검거 위주의 무관용 원칙을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5월 2일 시청 앞.
엄마와 딸이 경찰버스로 찾아왔다.

엄마와 어린 딸의 애원에도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경찰은 끝까지 관용을 보이지 않았다.




+ 6월 2일 피디수첩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 편.
  캡쳐와 멘트는 베스티즈 펌. 올리신 분이 적극적 재배포 권하셨습니다. 마음대로 퍼가셔도 됩니다.
  홀로 외로이 피묻은 깃발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PD수첩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 퇴근길에 지나가던 아무 관계없는 시민까지 유치장에 잡아넣고
  외국인 관광객을 가슴뼈가 으스러지게 구타하고
  다섯살 어린 아이가 촛불을 들고 집에 가는 것조차
  무장전경이 '좌파를 철저히 뿌리뽑겠다'며 막아서는 나라. 
  당신과 내가 살고 있는, 우리들의 2009년 대한민국.
Posted by 강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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